소비의 비밀
우리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인연을 맺는다.
가깝게는 가족으로부터 친구 애인 상사 동료 등등
그 명칭을 수적으로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사실 이런 다양한 만남 속에서 결속 배척 존중 내지는
멸시되는 생각과 말과 행위의 집적화가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안고 부대끼는 파란만장한 삶의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거의 매일 같이 각자 터득한 처신 법을
총동원해서 공유면적의 한계를 허무는 노력에 질주 한다.
그렇게 뚫린 소통의 길을 따라서 우리의 안목과 식견이
넓혀지고 아울러 공동체가 변화하고 이 땅의 역사와 문명이
보다 넓은 지평을 열어가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탓이다.
거기다 치밀한 손익계산의 생산성으로 잘 조직화된
노동에 의해 거침없이 변모하는 물리적 환경에 따른
윤택한 생활 현장들은 우리들에게 다면적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동시에 그 유용한 가치를 증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잘 조직화된 일상의 내용들을 섭렵하기 위해
끝없이 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역전된 주종의 위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삶을 점유하는 것이 아닌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한 듯이 문명의 이기적 기능들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쾌락에 매몰되어 그 상황을 지속 유지
확대하기 위한 숨 가쁜 노동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지식과 기술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순간 잊어버리기
시작 한다는 얘기다. 최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이 세상의
진정한 배경과 그 정교한 구조와 체계가 어디로부터 오는지
그 원점으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한 채 자기 반영의 대상 세계로
노예처럼 끌려가고 만다는 것.
때문에 거대하고 화려한 도심 속을 거닐면서도 복잡한
사고와 다원적 경험의 기억 속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 규모에 압도되거나 정교한 기술들이
짜놓은 다양한 형태와 질감에 매료되어 그 순간의
관계 속에 투사된 자기 진실의 실상을 놓아버린 채
그저 한 순간의 감각으로 흩어져버린다.
이른바 경험을 경험한 경험이 자동차로 내달리는 거리와
기억을 기억한 기억들이 초고층 빌딩으로 올라가는
투영적 공간 속에서 대개의 경우 길들여진 의미 내지는
이미 결정된 신호등의 점멸처럼 조작된 소비 감성으로
풍화되어 간다는 말이다.
앞서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우리 역시 스스로
고안, 개발한 삶의 장난감 속에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그 작동
에너지로 소모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노동의 비극이다.
때문에 내가 한 장의 티켓이나 현금을 들고 극장과
상점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거대한 스크린 혹은 특별한
어느 인연 사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동일한
과거인 앎과 앎이 스스로를 안이비 설신의(관찰자)와
색성향미촉법(관찰대상)이란 서로 다른 상대성으로
분열하여 감시 검열 혹은 거부, 긍정하는 관계로 투쟁하는
사고과정으로 일희일비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스스로를 거대한 과거 과정의 한 패턴으로 낭비하는 것이다.
이처럼 근래 들어 더욱 고도화되는 사회지식과 함께
변화하는 세계 경제 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재빠르게
재편되는 21세기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매일 같이 경험하는
것들은 수 백 수 천 년 동안 일관되게 이어져 온 현상일 뿐이다.
즉, 인간의 온갖 심리적이고 육감적인 내용들을 끊임없이
카피 확대 재생산하여 현대적 언어와 감각으로 수정
보완 왜곡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얘기다.
본질적으론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인류는 오직 하나의 과정 속에 있다는 얘기다. 복제와 반복...
작금의 현대인이 누리는 소비생활의 실재 내용이란
그 옛날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 선달 식의 상업적
술수에 속아 수많은 이름과 디자인, 성능과 모양으로
재포장된 우리 스스로의 웃음과 눈물과 분노와 공포를 대상으로
거래하는 무상한 짓거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란 뜻이다.
내가 나를 소비하기 위해서 내가 번 돈을 타인에게 지불하는 것이
우리 일상생활을 위해 결정하는 세심한 씀씀이들의 핵심이라는 것.
소위 경제적 미덕으로 치장된 화려한 소비문화의 진짜 얼굴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는 기만 행위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경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너와 나는 오늘도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으로 스스로의 생명력을 탕진하고
있다는 것.
현대인이 추구하는 소비가 핵심인 최첨단의 삶이란 결론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노예화 하는 끝없는 분열과 기망의 자기 파괴적인
폭력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