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데부데
우리 경험 속에는 깨달음의 좌표라고 여겨
지는 보석 같은 경계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
서도 다음 세 가지는 주목해 볼 만하다고 본다.
1. 꿈의 기만성
꿈은 재미있다. 현실 같지 않은 현실감으로 또 다른 존재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무지 상황을 특별한
경험 형태로 드러내는 상태라고 할까? 그래서 그것의 환
상성은 동일한 것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이고 그것을 있
는 그대로 인식하는 경험계의 부조리성만을 의미하진 않
는다. 즉, 꿈의 본질은 전체 내지는 하나의 의식으로 통일
된 동일성 내용을 각기 다른 대상과 관계로 착각하는 것
으로부터 비롯되는 존재 감각과 감정 그 의미와 가치와
목적의 시간들이 갖는 무상성만을 뜻하지 않는단 것이다.
그것의 진실은 무한 반복의 기계성 속에 자리한 자동적
과정에 따른 자기 부재라는 것. 그 인식이 만들어낸 나,
자아의 절대 타성이 바로 그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참된 스스로성의 창조적 기회를 파괴하는 주어진 조건의
절대 폭력성을 꿈이 내포하는 진리적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 기억 속에 담긴 경험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린 아마도 삶의 핵심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으로
닫혀 이미 완성된 과정을 살아가는 존재 의미가 무엇
인지 꿰뚫어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꿈과 생시는
하나의 의식 세계니까.
2. 사고의 이중성
사고의 껍데기는 꽤나 싱겁다. 하지만 그
탈피 과정은 상당히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우리가 어느 날 문득 지껄이는 사고를 이해
하게 되었을 때 참으로 오랫동안 막혀 있던
칸막이가 걷힌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내가 듣는 것과 들려지는 것 혹은 듣
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는
것. 인간 무지의 진정한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
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곰곰이 음미하는 시간
이 필요한 탓이다.
내가 분리되었고 인식이란 그런 매 순간으로
서의 자기 관계에 지나지 않는 일상의 기망적
반응에게 붙여지는 이름들을 수집하는 잘 훈련된
고용 노동에 불과하다는 것. 그와 같은 인식의
한계 속에서 우리가 늘 고통스럽게 마주하던
자기 무지가 도대체 무엇이고, 알아야 할 자기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도록 강요받는 혼란
스런 생각과 말과 행위의 가면을 마침내 알게
되는 것은 감격스런 환희만은 아닌 까닭이다.
3. 의식의 무의식성
우리들은 너무 쉽게 정신을 의식과 무의식 상태
로 나눈다. 하지만 정작 무의식의 상대성으로 분리
한 생생한 자기의식이 사실은 완벽한 무의식이란
걸 눈치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물론 그 무의식
성 속에 자리한 타성의 원점을 볼 수 없는 것은 당
연하다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무의식의 반대로 갈
라놓은 자기의식의 진정한 무의식적 상태를 깨닫고
그 실상을 보게 된다면 천지개벽이 무엇인지 분명
히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배우고 습득한 스스로의 진실들이
하나의 옷과 같다는 점을 알게 될 테니까. 옷을 수선
하거나 뒤집는 것이 얼마나 구차한 것인지도 이해하게
되는 탓이다. 말하자면 깨어남과 창조의 차이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진정한 통찰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
하는 순간적 통로로서의 자기 현재를 초월하는 그야말로
특별한 진리의 참된 스스로성이 열리게 된다는 얘기다.
한번 살펴보라. 있는 그대로의 절대 타성을 감추기 위해
완곡한 자기 무지 현상으로 변화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