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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시

인생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명쾌하게 단정할 순 없지만 불현듯 옛말이 떠오른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다. 썩 적절하진 않을지 몰라도 모두에게 버거운 세상살이의 핵심을 잘 짚어낸 말이 아닐까 싶다. 우선 삶의 고단함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것에서 대체로 긍정적 안도감을 갖게 하는 표현이라 좋다. 아주 오래전 잊힌 어느 시간 속 하늘도 지금처럼 아무나 겪어야 했던 흔한 일상들로 붉게 물들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주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쏙 빼닮았다는 것.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꽤나 다양한 논점으로 우리를 지치고 부서지게 할 것이다. 쉽게 결론지어질 사안이 아닌 게 분명하다. 따질게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 뜻과 전혀 상관없는..

소소 단상 2022.12.23

어느 백 년

우리는 백 년 전 있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백 년 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을 찾기 위해 백 년 전으로 돌아가거나 백 년 후의 나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물론 우리의 현재가 저 혼자 뚝딱 생겨났다는 말은 아니다. 앞서간 수천 년의 미래로 이어진 것이며 마땅히 다가올 몇백 년의 과거로 남겨질 시간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가 없는 영원과 무한 역시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이다. 그 특별한 시점을 결정하는 단 한 번의 경험인 나는 유일하지만 유랑하거나 유전되지 않으며, 적어도 모든 시대와 세대의 절대 경계인 한 인간으로서 시작과 끝은 지금 여기에 있다는 뜻이다. 무상한 반응을 점토처럼 성형하는 기억의 외피성에 의해 한시적인 유동성 에너지가 수천 년 전과 수백 년 후를 ..

소소 단상 2022.12.10

무아

예로부터 수많은 지면과 활자를 빌려 인간의 자기 진실을 다툰 사례는 참으로 많다. 무아無我의 논리도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까지 다루어진 무아의 실상은 형이상학적 추론 끝에 매달려 무한의 영역으로 표백되거나 고색창연한 옛 글의 교조적 해석으로 말미암아 대략 난감해지는 발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이것을 표현 방식의 한 형태로 풀어보려 한다. 무아를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 가운데 하나인 부정에 의한 강한 긍정에서 그 의미를 찾겠다는 뜻이다. 무아로 부정된 나我는 무엇이며 과연 절대 공성이 그 본질일까라는 의문으로 부터의 출발이다. 보통의 우리는 나는 나다라는 느낌이 일종의 마비성 무의식 상태라는 걸 모른다. 그 까닭은 대부분 생각 속에서 접하는 그 순간은 한 생명으로 살아 있는 현재가 ..

소소 단상 2022.11.30

실수

무소유는 실수다. 빗나간 관계를 장식하는 외형적 표현인 탓이다. 인간의 시간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사고思考 내지는 경험이라 적고 싶다. 과거 과정이란 뜻이다. 세상은 수많은 누군가의 흔적들로 요란한 만화경 통로라고 할까. 즉, 사회적 소통으로 직조되는 삶이란 한 인간의 의식 안에서 습득된 언어들에 의해 상대성 관계로 분열된 경험 정보들의 자기 기망적인 이합집산과 상호보완 작용으로 형성되는 홀로그램 같은 투사적 현상이란 뜻이다. 따라서 그런 과정의 진실이 모두 숨겨진 무명 상태의 일반적인 의식들로 혼란스런 안이비설신 세계는 무소유로 변화할 수 있는 실재적 경계가 없다. 무소유가 실수인 이유다. 더구나 그 표현의 방향을 관계 소멸의 진리적 궁극에 맞추면 그 허당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

소소 단상 2022.11.19

패착

종이 문자에서 디지털 기호로 급변하는 열악한 생태 환경 속에서도 출판계는 여전히 질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의 알싸한 잉크 냄새로 베어든 그들의 진한 땀방울들이 언제나 눈부시게 빛나길 희망한다. 그런데 일반인을 대상으로 간행되는 명상 관련 도서를 소개하거나 정독한 다수의 문장들을 대할 때면 반가움보단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몇몇을 제외하곤 깊은 통찰로 활짝 핀 수승한 의식의 길이 아닌 상업적 수단과 그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잘 가공된 문장들의 소란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거의 모든 저작물에서 공통의 관심사로 언급되는 지금 여기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경쟁과 차별, 학연 지연 등 계층 간 ..

소소 단상 2022.11.16